제가 잘 알고 지내는 어느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여자교사인데 결혼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화장품, 옷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집에서 먹는 밑반찬까지도 학부모들이 해 주는 것을 먹고 있습니다. 제가 그 교사와 약간 가깝게 지내다 보니 (가깝게 지낸다고 하여 남녀관계는 아닙니다…) 이 교사가 저에게 많은 호의를 베푸는데 대부분 ‘이건 우리 반 학부모가 갖다 준거야…’ 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도 그런 경우가 많아서 한번은 제가 조금 걱정을 표시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별 것 아냐. 그냥 밑반찬 조금 해 주는 것 먹고 화장품 같은 것 조금 사 주는 것 쓸 뿐이야. 얼마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내가 자기 애들 가르친다고 바빠서 반찬 해 먹기도 힘드니까 해서 갖다주는거야. 그거 만들 시간에 조금 더 쉬면 자기 애들 더 잘 가르칠 것 아냐…’
그래서 제가 ‘촌지’ 에 대해서 약간 걱정을 하였더니,
‘아… 그거 요즘은 거의 없어. 그리고… 가끔 주긴 하는데 그래봤자 얼마 되지도 않아. 그냥 정말 점심값 정도야… 점심 같이 먹고 싶은데 같이 먹을 시간이 안되니까 그냥 점심값으로 주는거지…’
이 교사는 20대 초반에 교사가 되어 (그 당시는 교대가 3년제였거든요…) 지금은 거의 50대 후반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각이 무뎌져 버린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촌지봉투 안에 단돈 10만원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분명히 뇌물입니다. 대가성은 당연히 입증되는 것이죠. 그리고 밑반찬, 화장품, 아주 싼 옷이라도 그건 뇌물입니다. (하긴 밍크코트도 있긴 하더군요…) 요즘은 또 김영란법 때문에 굳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문제가 되긴 합니다.
갑의 위치에 오래 있다 보면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감각의 유지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행위에 대하여 그때 그때 법전을 찾아보고 위법성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때 우리 행동의 준거가 되는 것은 건전한 상식이고 이 건전한 상식에 의하여 우리는 사회적인 정상범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질이 계속되다 보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가 정상인가에 대한 감각이 상실될 우려가 큽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아무 문제 없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은 비난을 하게 되고, 자신을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뭔가 다른 이유로 비난을 한다’ 라고 생각을 해 버리는 비뚤어진 인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지금 갑의 위치에 계십니까? 계급장 떼고 주변의 말을 한번 들어볼 수 있는 기회 꼭 가져 보세요. 물론… 을들은 왠만해서는, 아니 거의 절대로 그런 좋은 말 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을의 특권입니다…
딱 하나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좀 지독한 놈과 관련한 황당한 얘기입니다.
제가 아주 잘 아는 사람 하나가 있는데 이 사람은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고 직급도 이제 겨우 차장 정도입니다. 하지만 회사 자체가 나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이다보니 이 회사에 납품하는 거래선도 많은데 이 거래선에서 가끔 술접대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잘 아는 그 지독한 놈은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다지 잘 마시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술자리 접대를 제안해도 전혀 반갑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지독한 갑은 불쌍한 을의 사장을 직접 백화점으로 불러냅니다. 그리고는 자기 옷을 사 달라고 아주 떳떳하게 요구합니다. 을의 사장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하지만 그래도 사주게 됩니다. 물론 웃는 얼굴로.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또 백화점으로 불러 내는데 이번에는 그 지독한 놈의 이쁜 딸들이 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장은 그 이쁜 딸들의 옷을 사 주고 용돈도 조금씩 쥐어 줍니다. 이 지독한 놈의 장모님은 멀리 갈 때마다 누군가 사 주는 KTX 특실 기차표를 손에 쥡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이 지독한 놈의 가족들은 누군가 사 주는 비행기표를 손에 쥐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 정도 되면 분명히 문제입니다. 만일 그 회사의 사장이 알게 되면 큰일 날 일이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지독한 놈이 자신의 행위가 잘못 되었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술 마시는 것보다 돈도 훨씬 덜 들고 몸에도 좋은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독한 놈의 부인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온 세상에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지독한 놈이 휘두르는 그 황당한 갑질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지독한 놈이 납품업체의 대금결제 실무자라는데 있습니다. 지독한 놈에 대한 접대 (사실 이 경우는 그냥 뇌물입니다) 는 대금결제를 최장 2개월 정도 앞뒤로 오가게 합니다. 잘 안 보이면 그냥 단순한 업무지연만 해 버리면 되는 것이거든요.
갑질 중 갑들이 잘 모르면서 을들에게 큰 해악을 입히는 것이 바로 결제일정입니다.
회사계좌에 언제나 엄청난 돈을 꽂아 두고 일을 하는 갑들과는 달리 대다수의 을들은 당장 그 달 직원급여도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갑의 입장에서는 ‘고작 며칠’ 이겠지만 그 ‘고작 며칠’ 동안에 을들은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것입니다.
갑의 담당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업무처리순서 및 속도에 불과한 대금지급일정이 을에게는 피마르는 생존경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말한 그 지독한 놈 같은 권력이 생기는 것이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갑의 입장에 있으셨던 분.
혹시 이미 줘야할 돈을 서류 만들기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경우는 없으셨던가요? 한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정부지원사업, 해외투자유치, 콘텐츠 전문가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前) 다산네트웍스 고문
前) 월트디즈니 TV 이사
‘전문가로 살기’는 탤런트뱅크 소속 전문가가 직접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탤런트뱅크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으시다면 ‘전문가로 살기’ 시리즈를 참고해주세요. 탤런트뱅크는 전문가님들께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실 수많은 프로젝트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님과 어울리는 프로젝트를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