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 모임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던 K대표가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K대표는 최근 가업을 승계받아 제게 여러 기업경영 고민을 털어놓곤 했습니다.
이번 편지는 그간 주고받았던 평소 대화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었던 CEO의 외로움을 토로하는 편지였습니다.
문규선 전문가님께
회사는 25년 전, 아버님께서 창업하셨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매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작은 매출로 적정한 순이익을 만들어내는 가업이었습니다.
창업자인 아버지는 제조 현장에 계시면서, 제대로 생산성을 개선할 수 없는 어수선하고 불편한 환경이 눈에 띄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산 관리자로서 직접 작업대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현장 특성에 맞추려면 하나의 작업대가 다양한 목적을 동시에 충족해야만 했습니다. 필요한 높이와 규격에 맞는 작업대가 작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생각으로 창업하셨다고 합니다.
예상대로 제품은 생산 현장의 작업효율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생산성도 높아졌습니다. 연구소와 학교에도 납품하면서 매출이 점진적으로 늘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용했습니다.
저는 5년 전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사하기 전에는 은행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은행에서 다양한 금융 경력을 쌓고 있었습니다. 몇 차례 가업경영을 제안받았지만, 아버지 사업과 저의 경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연로하신 아버지께서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고, 쉽게 외면하기 힘들었습니다.
가업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요소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더군요.
업에 관한 지식을 채우는 동시에, 서로 다른 기업문화에 익숙한 직원이나 창업 멤버인 임원들과도 소통해야 했고, 세상의 변화와 동떨어진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했습니다.
사업의 향방을 두고 의사결정할 때 아버지와 우선순위가 달라 매번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퇴사한 회사 핵심 인원이 동종 사업을 창업해 우리 거래처에 침투했습니다. 회사 핵심 기술 유출에 신경 쓰지 않았던 아버지식 경영방침은 회사를 위험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매출에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입니다. 경쟁사는 가격을 앞세워 시장을 어지럽혔습니다. 창업자이신 아버님과 시장, 아이템, 지속 경영이라는 3가지 주제로 진지하게 대화했습니다.
- 이 사업을 유지할 것인가?
- 곧 가업을 승계할 예정인데, 이 사업을 계속 경영한다면 어떤 전략으로 이 비즈니스를 변화시켜야 하는가?
- 이 비즈니스와 연계된 신규 비즈니스에 대한 선택은 가능한가?
그동안 뵈면서도 말씀드리기 어려웠던 질문을 드립니다.
따뜻한 조언을 주실 것이란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K대표 드림.
기업의 모든 책임과 결정은 오롯이 CEO에게 있어 부담이 큽니다. 누구를 믿고 일을 맡겨야 할지, 약한 모습을 드러내도 될지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뢰를 담아 이렇게 편지를 보내준 K대표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 답장했습니다.
K대표님께 정성을 다해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왜 기업을 경영하나요?
기업(enterprise)이란 단어는 ‘사람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일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영어의 어원은 접두사 enter(between)와 라틴어 어근 prendre(take),
‘여러 가지 사이에서 기회를 잡는 것’으로 정의하지요.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의 조직체입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일한 대가를 받고 사는 직장인들, 세금으로 세상을 가꾸는 정치인들, 그리고 사업으로 직원 생계를 책임지는 기업인들입니다.
기업이 생산성을 향상시켜 축적한 자본으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기업가정신’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어받으셔야 할 것은 창업자의 ‘기업가정신’입니다.
여러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으나 지키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창업자이신 아버님이 ‘생산성’이란 가치를 발견해 사회에 헌신하셨듯이, 대표님도 지금 이 시대를 면밀하게 관찰해 타사와 차이를 만드는 가치를 찾아내실 차례입니다.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의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끝까지 살아남는 기업이 되는 법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남으려면 기업의 조직, 제도, 문화, 생존방식, 생활양식을 꾸준히 개선해야만 가능합니다.
“3년 전부터 시작된 손실은 그 전부터 조짐이 나타났을 겁니다.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겠지요.
하버드 전략경영학자 클레이튼 교수는 ‘기업은 시간과 에너지, 돈이라는 세 가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른 의사결정의 연속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합니다.
세 가지 자원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지금까지 놓친 부분을 점검하시고, 당장 쓸 수 있는 기업의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보세요. 우선순위와 변화를 위한 계획, 도전해볼 법한 기회를 모두 고려한 전략을 설계하고, 내부 합의를 거쳐 재빠르게 실행에 돌입해야 합니다.
전략의 마지막 요소는 실행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관리하신다면 대표님은 지속 경영 앞에 나타난 긴 터널을 유연하게 통과하실 겁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떠내려갑니다!
“승계의 완성은 회사 지배구조의 완성입니다. 이 모든 과정과 요소를 면밀하게 검토할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외부 전문가와 상의하신다면 효과적으로 가업 승계를 마무리하실 겁니다.
세상의 변화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떠내려가는 배 신세가 됩니다. 현상 유지는 없습니다. 변화에 눈을 떼는 순간 배는 떠내려가고 맙니다. 대표님께서는 지금 변화하고자 하시니, 분명히 잘되실 겁니다.
대표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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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선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前) 퍼시스 CFO
前) COSTEL 부사장
前) 독일 Hettich 한국사무소장
“리더의 진정한 조력자라는 비전을 갖고, 기업 현장에서 개선점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설계해
리더가 스스로 이행할 수 있는기업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전엔 골칫거리였던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하죠. ‘산업구조 해부’는 실무를 뛰는 엄선된 전문가들이 직접 쓴 현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업 문제를 손쉽게 고치는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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