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현대 도시를 건설한 주인공인 물질을 기후 파괴자에서 탄소 저장고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로버트 쿠얼랜드의 책, <콘크리트, 지구를 덮다>에서 쿠얼랜드는 콘크리트와 현대 문명의 미묘한 역사를 추적합니다. 로마인들은 콘크리트의 여러 유용한 성질을 처음으로 이용했습니다. 거의 2,000년 된 로마 판테온의 돔(Dome)도 콘크리트로 지어졌습니다. 그 후 콘크리트의 발전은 잠시 멈췄다가 산업혁명 이후 다시 문명의 발전을 견인하게 됩니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21세기에는 그 사용양은 극적으로 증가합니다. 중국이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쏟아 부은 콘크리트의 양은 20세기 내내 미국이 쏟아 부었던 콘크리트보다 더 많다고 추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입니다.
콘크리트가 없다면 현대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콘크리트는 현대 세계를 파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콘크리트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시멘트 산업은 전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를 차지하는데, 이는 항공 산업의 거의 두 배에 이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건축 소재인 콘크리트는 시급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화석연료를 덜 태우고,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를 대규모로 확장하고, 전기 자동차로 전환한다고 해도 콘크리트가 협조하지 않으면 배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세계가 향후 수십 년 안에 넷제로의 배출량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끊임없이 확장되는 우리의 건축 환경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콘크리트는 매우 효율적인 탄소 스펀지, 아닌 탄소 저장고가 될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의 변신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시멘트산업에서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은 탄소 무배출 시멘트를 만들었고, 다른 회사들은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카본 네거티브(Carbon Negative)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멘트 시장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내뿜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가둬 둘 수 있는 제품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시멘트의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지요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불리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시멘트는 규산칼슘이 질량의 2/3 이상, 나머지는 알루미늄과 철을 함유한 복합물 및 기타 화합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산화칼슘 대 실리카의 비율은 2 이상이어야 합니다.
복잡하게 들립니다만 시멘트의 레시피를 이해하기 위해 화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시멘트를 얻기 위해서는 양질의 석회암과 점토를 소성로(킬른)에 넣고 섭씨 1,500도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하면 됩니다. 노란색, 갈색, 회색, 검은색, 회색 입자가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주로 석회석, 즉 탄산칼슘(CaCO3)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산회탄소를 배출합니다. 소성로 내부에서 석회석을 산화칼슘(CaO)으로 바꾸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입니다. 산화칼슘은 점토(SiO)와 반응하여 서로 다른 종류의 규산칼슘을 형성하는데, 이것을 시멘트라고 부릅니다.
공사 현장에서 시멘트의 역할은 접착제와 비슷합니다. 시멘트에 물을 넣으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다시 탄산칼슘이 형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갈과 같은 골재를 추가하면 콘크리트 내부에서 골재가 고정됩니다. 그런데 모든 산화칼슘이 탄산칼슘으로 다시 변환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콘크리트가 형성될 때 모두 격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산화탄소를 격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여기에 도전과 기회가 있습니다. 제조업체는 시멘트의 탄소 배출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소성로에 사용되는 연료를 바꾼다든지, 운송을 위해 더 친환경적인 차량을 사용함으로써 배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
솔리디아(Solidia) 테크놀로지스는 석회암을 희끄무레한 광물인 규회석(Wollastonite)으로 대체하했습니다. 규산칼슘의 일종인 규회석을 사용하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규회석을 연소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양생 과정 중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가두어, 사실상 네거티브 배출을 달성합니다.
솔리디아의 레시피는 실험실에서 잘 작동했지만 상용화 과정에서 실패했습니다. 규회석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리디아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고수했습니다. 석회석을 덜 사용함으로써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레시피를 만들었습니다. 저탄소 배출 시멘트가 적어도 다른 시멘트만큼 좋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질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한 방식으로 스케일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솔리디아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블록은 시멘트의 1톤당 약 240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솔리디아 시멘트는 믹서기에서 모래, 자갈 그리고 솔리디아 레시피의 골재와 물로 콘크리트 반죽이 됩니다. 이 콘크리트 반죽은 교반되고 거푸집에 부어지고 이산화탄소가 가득 찬 밀폐 공간으로 옮겨집니다. 이 공간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경화됩니다.
콘크리트의 수명주기 전체에 걸쳐 솔리디아 시멘트는 포틀랜드 시멘트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70% 절감합니다. 1톤의 포틀랜드 시멘트가 수명주기 동안 1톤의 탄소를 방출한다면, 솔리디아 시멘트는 300kg만 방출한다는 의미입니다. 제로(0)는 아니지만 극적인 변화입니다.
게다가 솔리디아의 시멘트가 혼합된 콘크리트는 경화하는데 24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포틀랜드 시멘트가 경화되는 데는 28일 결리죠. 이 결과는 미국 에너지부가 검증했습니다. 솔리디아는 또한 자사 제품의 1만톤을 생산하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시멘트 공장을 이용했는데요, 이는 솔리디아 기술의 확장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솔리디아는 세계 1, 4위의 시멘트 회사인 홀심(Holcim)과 하이델베르크시멘트, 세계 최대 투자회사 중 하나인 클라이너퍼킨스코필드바이어스, 유명 화학 업체인 바스프 등이 투자자로 참여 중입니다.
캐나다 스타트업 카본큐어(CarbonCure)는 북미 전역에 50여개의 콘크리트 제조 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카본큐어는 시멘트 레시피를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공정의 비효율성을 발견했고, 그 공백을 이산화탄소로 메웠습니다.
시멘트를 물과 자갈에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면 대기에서 이산화탄소와 결합하여 탄산칼슘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콘크리트가 양생되면서 시멘트가 이산화탄소를 가두기 위한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카본큐어는 전통적인 포트랜드 시멘트를 사용하는 콘크리트 제조업체들과 협업합니다. 열이나 증기 양생 대신에 이산화탄소로 콘크리트 블록이 경화되는 공간을 만듭니다. 이산화탄소가 100%인 환경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0.4%에 불과한 공기보다 시멘트가 훨씬 더 많이 반응하게 됩니다. 탄소광물화 과정이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제품은 인장 강도와 경도가 더 높습니다. 순수한 이산화탄소는 신업의 공급자들로부터 공급되는데, 공장에서 화학적 공정으로 분리하여 생산됩니다. 몇년 전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카본큐어의 콘크리트를 마데라와 프레즈노 사이의 30마일에 걸쳐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호주에 본사를 둔 또 다른 스타트업 칼릭스(calix.com.au)는 석회석을 가열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는 공정을 개발했습니다. 소성로는 석탄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허기 때문에 제조시 에너지 단위당 탄소 배출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소성로에서는 석회석과 석탄을 같은 연소실에서 태웁니다. 그러나 칼릭스는 외통에서 천연가스가 연소되고 석회석이 위에서 아래로 내통으로 쏟아지는 이중 구조를 사용합니다. 열이 석회암과 직접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소성로보다 반응 효과가 낮습니다. 그러나 칼릭스는 석회암을 미세한 가루로 미리 응고하여 이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열과 접하는 표면적을 증가시키고 간접적인 열이 동일한 반응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석회암이 반응하면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석회암으로 변환된 후 순가스로 갇혀 다른 공정에서 사용되거나 지하에 저장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시멘트 생산 공정에서 탄소배출을 급격하게 줄여줍니다. 칼릭스는 하이델베르크 시멘트와 협력하여 유럽연합으로부터 1,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아 이 기술이 상업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 카비크리트(Carbicrete)는 시멘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산업용 슬래그를 콘크리트의 결합제로 사용합니다. 화학적으로 말하면 슬래그는 시멘트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규산염과 산화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혼합물입니다. 이산화탄소가 존재하는 곳에서 콘크리트를 경화해 기존 콘크리트보다 사양이 우수한 네거티브 탄소배출 콘크리트를 생산합니다.
필요한 만큼의 콘크리트를 생산할 수 있는 슬래그는 세상에 충분하지 않지만, 카비크리트는 틈새 응용 사례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채굴이 필요한 규회석의 제한적인 공급과 달리 슬래그는 금속업계의 부산물로활용 가능합니다.
탄소포집저장(CCS) 및 탄소포집활용(CCU)
탄소포집저장 (CCS, Carbon Capture & Storage) 기술은 화력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배출원으로부터 발생되는 다량의 CO2를 고농도로 포집한 다음 지중이나 해저에 주입함으로써 CO2를 대기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입니다. 이 기술은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포집된 CO2의 저장을 위한 대규모 저장소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면 배출원에서 발생되는 CO2를 산업적인 용도로 직접 이용하거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여 활용(Utilization)하는 기술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CO2의 활용을 통한 저장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래 CCS 기술에서 발생되는 CO2 저감비용을 크게 상쇄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산화탄소 포집 활용(CCU) 기술개발 및 통합실증 예타사업 기획을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보여준 기술은 이산화탄소 광물화라는 범주에 속합니다. 무기물에 이산화탄소를 고정화(Fixation)시키는 것으로 고정화, 광물탄산화(Mineral Carbonation) 혹은 광물화 처리(Mineral Sequestration)로도 부릅니다. 이는 지구의 풍화작용과 거의 같습니다. 이산화탄소와 반응할 수 있는 금속산화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광물과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안정된 탄산염 광물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CCU 기술은 연소 후 배출가스 중의 CO2를 직접 활용하기 때문에 CCS에서와 같은 지중⋅해양 저장을 위한 일련의 공정이 없이 광물화를 통한 CO2 고정화가 가능합니다. 자연에서 발생되는 광물 탄산화는 반응이 매우 느리기 때문에 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CO2의 처리를 위해서는 공정상의 반응속도 증가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상위권의 철강생산국으로, 이에 따라 발생되고 있는 슬래그의 양은 매우 많습니다. 슬래그에는 칼슘 및 마그네슘과 같은 알칼리 금속이 약 20-40% 함유되어 있어 이산화탄소 저감 물질로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향후 광물탄산화 기술의 경제성을 제고한다면 광물탄산화 물질의 소재화 및 건축자재 활용 등 새로운 산업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