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경직으로 일자리 부족한 한국 노동시장
기업들, 고용 패러다임 시프트 시도에 주목
#부산에서 고령친화상품을 제조판매하는 A기업 대표는 새로 런칭할 기능성 속옷을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해외에도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 전문가를 구하던 참이었다. 긱 이코노미 플랫폼에서 상담한 뒤 업무 성격에 맞는 전문가를 추천받았다. 전문가 B씨는 쌍방울에서 20년간 쌓은 국내외 신규 브랜드 런칭 경험과 판매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방면으로 의견을 냈다.
A기업 대표는 작년 9월부터 전문가 B씨와 3개월동안 수차례 온오프라인 미팅을 갖고, 총 600만원을 지불했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난 뒤 의류 유통 방면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까지 알게 돼 의뢰 결과에 만족한다는 후기를 남겼다.
기업들은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뽑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는 2017년부터 기업들이 새로운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기업에게 정규직 채용이란 고정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고정비용은 매출이 줄어든 중소기업에 한층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부문제를 해결한다는 여러 컨설팅을 받아도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아 갈피를 못 잡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신사업이나 내부 문제를 외부에 맡기는 인력 외주가 하나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형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이하 유연고용)라고 불리는 사회현상이다. 기업들은 국내에도 유연고용 플랫폼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고 일시적 계약을 고민한다.
대표적인 한국 유연고용 플랫폼으로는 탤런트뱅크와 크몽, 숨고가 꼽힌다. 탤런트뱅크는 기업에 전문 인력을 제공하고, 크몽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외주하고, 숨고는 생활서비스를 지원한다. 기업들은 플랫폼을 통해 전문적으로 일을 처리해줄 전문가를 구하고, 전문가는 플랫폼에서 지속적으로 의뢰를 받아 안정적인 수입을 추구할 수 있다. 이 플랫폼에서는 단순히 새 브랜드 로고를 만들거나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있고, 전문가 도움을 받아 전혀 모르는 신사업에 도전해볼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심화돼온 고용경직으로 점점 더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구인배수는 워크넷의 신규 구인인원을 신규 구인건수로 나눈 값으로, 2017년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는 중이다.
2017년 0.65를 기록한 구인배수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해에 0.39까지 낮아졌다. 구인배수가 낮을수록 구직이 어렵다는 뜻이자, 직업을 구하는 사람수보다 구인하는 기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지난 4년간 유효 구인배율이 1을 넘었던 일본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런 시장상황에서 한국형 유연고용 시스템은 기업에게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할 지렛대 역할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전문가가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인력을 맞이할 이유가 줄어들고, 구직자 입장에서는 한 직장에 매여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단계에서는 은퇴를 앞두거나 정년이 지난 사람들이 유연고용 플랫폼에 등록하고 의뢰를 받고 있다. 이후 패러다임이 바뀌면 지금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시스템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탤런트뱅크 공장환 대표는 “미래의 고용은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하루를 어떤 의뢰로 채우고, 일주일을 필요에 따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 들어 월요일과 수요일은 A기업, 화요일은 B기업, 목요일은 C기업과 근무하면서 금요일에는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근로환경이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긱 이코노미의 대표사례는 우버와 에어비앤비다. 우버는 택시기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동일한 이동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소를 소유하지 않고도 여행객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해외에서 2017년경 떠오른 유연고용이 한국 노동시장에도 활력을 불러넣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금까지 유연고용은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로고 요청하기’나 ‘배달 라이더 부르기’ 정도에 그쳤다. 한정된 프로젝트를 외주 맡기는 개념에 가깝다. 앞으로 유연고용 시장은 기업의 신사업이나 전반에 걸쳐진 위기를 관리하는 인력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크몽 박현호 대표는 “이미 패러다임 변화는 시작됐다. 코로나19가 비대면 업무 전환을 앞당기면서, 한 직장 ‘동료’로 근무하던 시대에서 프로젝트 ‘파트너’로 협업하는 시대를 맞을 것”이라며 “고용이 경직돼도 인적자원 필요성이 낮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고용이 아닌 활용의 형태로 채용시장이 전환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출처 : 최정윤 기자, 한국섬유신문(http://www.k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