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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충교역1: 아랍에미리트에 나주 배 2000만원 지불한 K-국방

방산 몰라도 매출 올릴 수 있어요

 

지방 영세 철공소로 시작해서 연 매출 2,500억 이상 방산 업체로 성장한 업체가 있습니다.

지방 영세 철공소에서 2,500억원을 벌게 된 비결이 무엇인지 상상하실 수 있나요?

이 업체 성장배경의 핵심은 바로 ‘절충 교역(offset trade)’이라고 합니다.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 간 무기 거래 시 반드시 계약에 포함되고 이행해야 하는 제도죠.

 

절충교역은 다른 나라로부터 무기나 장비를 구매할 때 국외 계약상대방으로부터 관련 지식이나 기술을 이전받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국외로 국산 무기•장비 또는 부품을 수출할 때 일정한 반대급부를 제공받을 것을 조건으로 거래하기도 합니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서독 주둔 미군 비용을 ‘상쇄(offset)’하기 위해 서독군에게 미국산 무기 구매를 요구한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이후 서유럽의 NATO 회원국이 미국 무기를 구매할 때 바터무역(barter trade, 수출입상품 거래액에 맞춘 가치 교환) 형태로 절충교역을 요구했고, 지금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20여 개 나라에서 보편적인 무기구매 제도로 정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3년 국방부에서 채택해 제도로 자리잡았습니다.

 

여기서 절충교역을 성사하기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단위 사업으로 1천만 불. 그러니까 한화로 100억 이상의 무기 거래 계약 금액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용어와 제도는 국방사업에 관심없는 민간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낯선 제도는 결국, 기업의 국방사업 진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수출역군의 쾌거, 캐나다에 수출되는 포니

경향신문

쉬운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자동차 개발에 막 첫걸음을 내디딘 현대자동차가 1983년 ‘포니Ⅱ’를 캐나다에 수출하면서 ‘수출역군의 쾌거’라는 수식어가 언론에 대서특필됐습니다. ‘포니Ⅱ’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죠.

1983년 당시 선진국이었던 캐나다는 왜 한국의 자동차를 수입하게 됐을까요?

 

여기서 절충교역이라는 제도가 등장합니다. 절충교역 의무에 따라, 캐나다는 대한민국의 무기•장비 또는 부품을 수입해야 하거나, 캐나다가 판매한 무기 관련 지식 또는 기술을 이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상 캐나다가 수입할 만한 방산 물품이 딱히 없었고, 대한민국은 대신 현대의 ‘포니Ⅱ’를 캐나다에 수출하기로 했습니다. 포니 II는 그 덕분에 대량수출에 성공했습니다.

 

2022년인 지금도 100억 이상의 무기구매 건에는 절충교역을 진행합니다. 지난 2015년에는 미국 록히드마틴사 F-35 전투기를 구매하면서, 한국은 ‘절충교역 이행을 위해 AESA 레이다 같은 미국의 첨단 핵심기술을 전수하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절대 기술을 이전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고, 상당히 오랜 기간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미국이 대한민국에 AESA 레이다와 같은 첨단 기술을 전수한다면, 그 수혜는 국내 방산업체가 받겠죠. 국내 방산업체는 이를 토대로 독자적 국산화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 등장했던 2,5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방산업체도 90년대 절충교역에 참여하면서 해외 방산업체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성장한 기업입니다. 절충교역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작은 철공소 관점으로 사업을 전개했을 겁니다.

 

 

 

아랍에미리트와 나주배?

이번에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차세대전투기 ‘KF-21 (보라매사업)’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이야기입니다.

 

KAI는 아랍에미리트에 수리온을 수출하면서, 한국 역시 아랍에미리트에 절충교역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KAI는 아랍에미리트에 절충교역을 모두 이행했지만, 그런 KAI의 노력과 달리 이행해야 할 절충교역 비용이 약 2천만 원 정도 부족했습니다. 절충교역은 계약된 기간 내 이행하지 못하면 상대국에 계약 금액의 10%인 금액을 벌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KAI는 고민 끝에 아랍에미리트에 전남 나주의 특산물인 ‘배’ 2천만 원어치를 마지막 절충이행 비용으로 지급했습니다. 당시 방산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실소가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랍에미리트와의 절충은 완전히 이행했고 사업은 탈 없이 종료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결과는 그 이후에 일어납니다. 전라남도 나주의 특산물인 ‘배’를 선물 받은 아랍에미리트 왕족이 인근 오만 왕족에게 우리나라 ‘배’를 선물했고, 나주 배를 먹고 맛에 반한 인근 왕족이 추가 주문을 요청했습니다.

 

 

위 사례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절충교역입니다. 본인도 모르게 절충교역 참여업체로 선정됐고, 정부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오늘날의 절충교역에는 이런 행운이 흔치 않습니다. 기업이 노력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절충교역이라는 제도를 꼼꼼히 습득하고, 무기 거래 등 방산 정보를 취득해야만 성공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절충교역에는 물품 가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판매가가 100원인 제품이 100원으로 인식되지 않는 특이성이 있습니다. 절충교역 거래대금은 ‘가치’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특성을 갖습니다. 100원짜리 제품은 상황에 따라 300원 혹은 500원의 가치가 책정될 수 있습니다.

 

2022년의 대한민국 국방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다다랐고, 해외 방산업체는 대한민국 방산업체를 또 하나의 경쟁업체로 인식합니다. 경쟁업체에 핵심 기술을 공유하는 꼴이라, 절충교역 이행을 위한 기술 전수를 꺼리고 있습니다. 과거 절충교역 이행은 군수품과 관련된 기술 전수 및 수출입이 전부였지만, 기술 이전을 꺼리는 해외방산업체 탓에 상황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휴전 국가로 구매력이 상당한 시장입니다. 해외 방산업체들이 대한민국에 무기를 판매하고 절충교역 이행을 위해 책임져야 할 금액은 상당히 큽니다.

 

2018년부터 산업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절충교역의 품목을 민수품(생활용품)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기존 방산을 전혀 모르더라도 내수와 수출만 준비했던 생활용품 제조 기업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새로운 기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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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국방분야 사업진출 및 해외 수출 전문가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現) Avix Global 한국지사장
前) 방위사업청 연구원/파트장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전엔 골칫거리였던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하죠. ‘산업구조 해부’는 실무를 뛰는 엄선된 전문가들이 직접 쓴 현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업 문제를 손쉽게 고치는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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