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영역이 바로 노동 시장이다. 주 4일, 주 40시간 근무 등으로 일과 외 시간이 늘면서 여러 부업을 하는 ‘N잡러’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 부업 뛰는 이는 56만6000명(통계청 고용 동향)으로, 역대 최고치다. 퇴근 후 배달이나 대리운전 같은 ‘생계형 부업’만 있는 건 아니다. ‘남는 시간에 내가 잘하는 걸 좀 더해서 수입 늘리겠다’는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비즈니스 마켓 플랫폼 크몽에 따르면, 부업을 위해 크몽에 본인 경력을 등록한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 7개사 직원은 300명 이상이다. IT 아웃소싱 플랫폼 위시켓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장소에서 하고자 하는 니즈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수퍼 프리랜서’를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수행하고, 업계의 명성으로 일감을 찾는 이들”이라고 정의했다. “열악한 처우에 놓인 프리랜서에 상대적인 개념”이라고도 설명했다. 이종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수퍼 프리랜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기술 노후화”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된다”고 설명했다.
수퍼 프리랜서를 찾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고급 개발 같은 ‘핵심 업무’도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원하는 프로젝트를 빠르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문직이 ‘자격증’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수퍼 프리랜서들은 실제 수행했던 업무와 기술로 자신을 입증한다. 대부분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프리랜서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수퍼 프리랜서의 시초는 IT 개발자들이었지만, 최근 2년 사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이다. 기업-전문가 매칭 플랫폼인 탤런트뱅크는 “신사업 개발, 경영 전략, 마케팅, 시장 개척 등 전문성을 갖춘 모든 분야에서 수퍼 프리랜서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몽도 “세무·법무·노무 등 분야에서도 수퍼 프리랜서 증가 추이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크몽 김태헌 부대표는 “수퍼 프리랜서를 연간 1억원(월 900만원) 이상의 소득을 내는 이들로 보는데, 지난해 대비 2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알음알음 이뤄지던 일자리-프리랜서 매칭을 요즘은 플랫폼이 흡수했다. 국내에서는 원티드긱스(원티드랩)·위시켓·탤런트뱅크·크몽 등이 대표적인 수퍼 프리랜서 HR(인적자원) 플랫폼이다.
HR 플랫폼은 프리랜서의 업무·경력에 맞는 적정 소득을 알려준다. 원티드긱스 측은 “수퍼 프리랜서는 일반적으로 동일 연차와 동일 스킬을 가진 직장인에 비해 소득을 20%쯤 더 버는 거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프로젝트 의뢰가 고도화되고, 수퍼 프리랜서가 세분화 될수록 이들을 매칭하는 기술도 똑똑해져야 한다. 플랫폼들이 공통으로 내세우는 무기는 ‘인공지능(AI) 매칭’ 시스템. 프리랜서들이 제공한 정보와 기업이 제시한 프로젝트를 대조해 가장 잘 맞는 궁합을 찾아준다. 이동훈 원티드긱스 팀장은 “매칭 의뢰가 들어와 실제 계약될 때까지 보름 정도 걸린다”며 “이 기간을 줄이는 게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1위 프리랜서 플랫폼이자 나스닥 상장사인 업워크(Upwork)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전문 기술직에서 프리랜서의 비중은 2019년 45%에서 2020년 50%, 2021년 53%로 계속 커지는 추세다. 학력 수준별 프리랜서의 비중도 석사 직군이 51%로 가장 높다. 이 외에 파이버(Fiverr), 구루(Guru) 등의 플랫폼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일 잘하는 수퍼 프리랜서 검증, 산재보험 적용 등은 숙제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수퍼 프리랜서들은 보통 5개 이상의 플랫폼에 프로필을 등록해 일감을 찾곤 한다. 결국 일 잘하는 슈퍼프리랜서를 독점으로 확보하는 게 플랫폼 경쟁력의 관건이다.
고용 기업 입장에선 제대로 된 전문가를 골라 일을 맡기는 게 핵심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HR 플랫폼에서 프로젝트 완료 후 평점 등 여러 형태로 수퍼 프리랜서의 실력 검증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누적 데이터가 많지 않아 빈틈이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입장에선 기업이 의뢰비 입금을 미루거나, 계약 당시 의뢰한 내용과 다른 일을 실제 업무에서 추가로 시키는 경우 이를 막을 장치가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고용 시장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지만, 제도 변화는 늘 늦다. 수퍼 프리랜서는 기존의 생계형 부업이 많은 긱이코노미 노동자들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편이다. 일각에선 지난 2019년 벌어진 ‘유튜버 과세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튜버들이 고수입인데도 불구하고,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생긴 논란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웹 기반 노동활동을 하는 수퍼 프리랜서도 유튜버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기업과의 고용관계가 늘 것이라 이들에 대한 통일적인 과세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배달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이 가능해졌지만 수퍼 프리랜서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것도 문제다. 박지순 교수는 “법 제정 이전에 업종이나 직역별로 자율 규칙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도 효율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승호·권유진 기자 wonderman@joongang.co.kr